끝에서 시작되다 04 | 눅 18:10–14왜 끝에 가서야 들렸을까? (feat. 교만과 겸손이 하는 일)
1. 방향만 알면 살 길을 찾을 수 있다
눈사태에 갇히면 가장 무서운 것은 추위가 아니라 “방향 감각 상실”이라고 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팠지만, 위가 아니라 아래 방향으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갔다고 한다. 살려고 애썼는데 오히려 죽음의 방향으로 힘을 사용한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방향을 주셨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그리고 그 말씀은 멀리 있지 않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명기 30:14
문제는 말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말씀을 놓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2. 왜 끝에 가서야 들렸을까?
사람들이 평소가 아닌 왜 인생의 끝자락에 가서야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일까?
교만이 그 말씀을 들리지 않게 만든다.
교만은 남의 죄를 본다.겸손은 나의 죄를 본다.
그래서 결국 교만은 방향을 잃게 만들고, 겸손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3. 바리새인: 성공한 종교인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인과 세리가 함께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다.바리새인은 금식하고 십일조하며 종교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반면 세리는 사회적으로 무시받던 죄인이었다.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를 의롭다 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세리)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누가복음 18:14
왜일까?
바리새인은 남의 문제를 이야기했고,세리는 자신의 죄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세리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누가복음 18:13
예수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누가복음 18:14
4. 예수님의 길: 먼저 낮아지라
예수님은 억지로 낮아지신 분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낮추신 분이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7–8
우리는 보통 끝에 가서야 무릎 꿇지만,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먼저 자신을 낮추셨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겸손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방향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진짜 지혜로운 인생이다.
나눔 질문
1. “교만은 남의 죄를 보고, 겸손은 나의 죄를 본다”는 말이 오늘 내 삶에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2. 최근 내 삶에서 “열심히는 살았지만 방향을 놓치고 있었구나” 느꼈던 순간이 있었나요?
3. 오늘 설교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문장이나 장면은 무엇이었나요?